오늘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 - 故 김명성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님 추모 7주기 :: 2008/07/24 09:50
우리나라의 프로야구는 팀당 126경기씩 총 504경기가 열린다.
팀당 치르는 126경기를 모두 다 이기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그 126경기 중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경기가 두 경기가 있다.
하나는 임수혁 선수가 2루 베이스에서 쓰러진 4월 18일이고, 다른 하나는 김명성 감독님의 메모리얼 데이인 7월 24일 이다.
#1. 오늘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
1999년 10월 20일 대구 시민야구장.
그 곳에서는 롯데와 삼성의 플레이오프 7차전이 열리고 있었다.
양대 리그로 치뤄진 그 해에 드림리그 2위인 롯데와 매직리그 1위인 삼성이 7전 4선승제의 플레이오프를 치뤘다. 그리고 1승 3패까지 몰리고 있었던 롯데는 5차전에서 호세의 역전 끝내기 3점 홈런, 6차전에서 박석진의 7이닝 퍼펙트로 회생, 경기를 최종전까지 몰고 갔었다.
마지막 7차전 역시나 0-2로 끌려가고 있었다. 6회 호세가 솔로포를 쏘아 올렸다. 그러나 3루 관중석에서 날아든 물병에 급소를 맞은 호세는 흥분해서 그 유명한 방망이 투척 사건을 벌이고 곧장 퇴장을 당하고 만다.
경기는 뒤지고 있고 중심타자는 퇴장을 당한 상황. 게다가 관중석에서는 끊임없이 오물투척이 이뤄지고 있었다.
결국 당시 주장이였던 박정태는 선수들에게 짐을 싸자고 했고 선수들은 하나둘씩 덕아웃을 떠나고 있었다.
그 때 김명성 감독님이 한마디 하셨다.
"너거들 마저 이러면 대한민국의 야구계는 어둡다."
김감독님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의 간곡한 만류와 설득으로 선수들은 다시 주저앉아 맥없이 글러브를 꺼내 들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을 본 박정태가 한 마디를 하였다.
"오늘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
결국 다시 재개된 경기에서 마해영의 백투백홈런으로 동점을 이뤘다. 이어지는 7회에 전날 너무 무리한 박석진이 김종훈과 이승엽에게 연속 홈런을 내줘 재역전, 하지만 8회에 임수혁의 투런 홈런으로 다시 동점.
그리고 10회말 만루 위기를 넘긴 그림 같은 호수비의 주인공 김민재가 11회초 때려낸 결승타와 11회말 주형광의 그림 같은 3연속 삼진으로 롯데는 극적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였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최고의 명승부라 일컫어지는 이 경기.
김명성 감독님의 만류가 아니였다면 선수들의 경기거부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시간은 흘러 무려 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당시 박정태 주장이 했던 말을 오늘 경기를 할질 안할지 모르겠지만 롯데 선수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다.
그리고 반드시 그래주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2. 김명성 감독님
1946년 9월 3일 부산 출생
키 : 177cm, 몸무게 : 90kg
직업 : 야구감독
선수경력 : 부산 부민초-경남중-부산공고(39회)-동아대-한국전력-육군-한국전력
포지션 : 투수
롯데자이언츠 재임기간 : 1999년 ~ 2001년 7월
재임기간 성적
- 1999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정규시즌 2위)
- 2000년 매직리그 2위(종합 5위)
- 2001년 중도퇴임(사망, 시즌 8위)
수상 : 1971년 국민훈장 석류장(당시 만25세)
1970년 전국 실업야구 다승 1위
청룡기 우승, 황금사자기 준우승(부산공고)
최고수훈상, 최다승리투수, 투수방어율 1위(실업야구)
2001년 7월 24일 사망
지금은 한화에 몸담고 있지만 99년 플레이오프 결승타의 주인공 김민재, 해외파 복귀 규제 완화로 인해 국내에 유턴해 두산 베어스에 몸담고 있는 이승학, 불운한 선발 투수에서 불펜으로의 보직 변경을 준비 중인 롯데의 이용훈, 이들의 공통점은???
그렇다. 모두 부산공고 출신들이다.
여기에 이들의 대선배이신 부산공고 출신이 한 분 계신다.
야구계에 많지 않은 부산공고 출신으로 고교시절 어우홍감독의 동생인 어지홍씨의 지도 아래 이재우와 힘을 합쳐 모교 부산공고 역사에 길이 남을 처음이자 마지막 전국대회 우승(청룡기)을 안긴 최고의 에이스.
1977년 한국 전력에서 선수생활을 접은 후 코치생활을 시작한 김명성은 롯데의 창단 코치로 근무하였고, 청보-태평양-삼성-빙그레-LG 등 수많은 팀을 옮겨다니다가 1998년 시즌을 앞두고 15년만에 팀에 복귀하였다.
그리고 당시 김용희 감독이 성적부진에 책임을 지고 1998년 6월에 팀을 떠나면서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김명성 감독이 팀에 복귀하였을 때 롯데의 마운드는 거의 폐허에 가까웠다.
당장 훈련에 들어가지 못하고 재활에 전념해야 할 주력투수만도 주형광, 문동환, 손민한, 염종석, 김경환 등 부지기수였다. 다행스럽게도 주형광과 문동환이 10승대 투수로 재기하면서 힘을 보탰지만 전체적인 팀전력이 회복하지 못하면서 2년연속 최하위로 떨어졌고 김용희감독은 시즌중에 옷을 벗고 만다.
6월부터 팀을 맡게 된 김명성 감독대행.
이전에도 몇 번의 감독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감독감이 아니라며 고사하기를 수차례.
LG시절에는 자신보다 어린 이광환 히어로즈 감독을 보좌하면서 LG의 투수왕국을 재건하기도 하였다.
암튼 김명성은 당시 팀을 최대한 추스려 5위권까지 올려놓기도 했으나 초반에 까먹은게 워낙 많은지라 결국 시즌을 포기하고 만다.
그리고 운명의 1999년. 그 해 김명성은 대행꼬리를 떼고 정식 감독으로 새롭게 부임한다.
문동환이 17승을 올리면서 완전한 에이스로 거듭났고, 박석진은 오랜 부상에서 탈출하면서 11승을 따내며 1997년 삼성에서 트레이드되어 온 이후 최고의 성적을 낸다.
무엇보다도 메이저리그에서 올스타전까지 선발된 경력이 있었고 3할2푼대 타율과 36개의 홈런, 122개의 타점으로 그동안 롯데타선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거포 역할을 해주며 팀타선을 이끈 호세가 있었다.
그리고 5억신인 차명주를 두산에 보내고 영입한 최기문을 통해 약점이였던 포수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1999년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하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만 두산을 4연패로 몰고 일찌감치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던 한화의 투수력을 견뎌내지 못하고 1승 4패로 물러나며 준우승을 차지한다.
이듬해인 2000년. 각종 악재가 롯데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포수 임수혁이 개막직후 시합도중 쓰러지면서 아직까지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호세 대신 영입한 우드라는 용병은 한달만에 기량미달로 퇴출, 대체용병인 화이트마저 중도에 개인사정으로 돌아가서 귀국종용을 무시하는 일까지...
하지만 좋은 일도 있었다.
입단과 동시에 수술대에 올라 오랜기간 재활에만 매진해 오던 손민한이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한 것.
지금 전국 최고의 에이스가 된 손민한의 뒤에는 수술직후 충분히 몸을 만들 수 있게 기다려준 김용희 감독과 김명성 감독의 참을성이 있었던 것이다.
덕장 김명성 감독의 지도력 아래 끈끈한 단합을 과시하며 매직리그 2위를 차지하며 준플레이오프에 진출.
상대팀은 삼성이였고 당시 사령탑은 롯데 출신의 김용희 감독이였다.
비록 우승은 못했을 지라도 2년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서 성공적인 지도력을 보여준 김명성 감독.
2년 재계약에 성공하였지만 운명의 2001년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호세가 팀에 복귀하면서 2년전보다 더 막강해진 공격력을 얻었지만 선수협 사태로 인해 마해영이 헐값에 삼성으로 트레이드를 가장한 퇴출되고 만다.
게다가 투수들이 또다시 줄부상을 당한 것이 팀의 성적에 반영되면서 시즌 초 7연패라는 좀처럼 따라잡기 힘든 하위권에 처지게 된다.
하지만 올스타브레이크를 마치고 후반가기 시작되면서 팀을 정비하여 아직까지는 4강권을 바라볼만한 성적이였고 경기수가 그만큼 남아있었다.
휴식일을 맞아 대구의 친구를 만나고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심장의 통증을 호소하면서 급히 병원으로 후송되지만 그날 새벽을 넘기지 못하고 절명하는 충격적인 일이 발생한다. 그 날이 정확히 2001년 7월 24일이다.
사상 처음으로 현역감독이 사망하는 사태속에 우용득 2군감독이 팀을 맡았지만 롯데는 최하위에 머물고 만다.
4위 한화에서 8위 롯데까지 승리숫자가 2승차이밖에 안되는 그야말로 난전을 벌였던 시즌이였지만 아버지를 잃은 슬픔으로 인해 일어서지를 못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 해부터 롯데는 전무후무한 4년연속 꼴찌라는 수모를 겪고 만다.
#3. 故 김명성 감독님, 당신의 우리의 영원한 거인입니다.
본인 스스로 감독감이 아니라고 자주 말했듯이 처절한 프로의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감독님이였다.
당시 사인은 성적에 대한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이어졌다는 것.
다도와 서예를 즐기면서 마치 신선같은 삶을 꿈꾸던 김감독님의 타계로 인해 대한민국 야구계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투수 조련사이자 가장 덕망있는 지도자를 잃고 말았다.
위에서도 말했던 99년 플레이오프 7차전 당시 선수들이 관중들과 이성을 잃은 난투극을 벌이며 경기를 포기하려 할 때 선수들을 만류하던 김감독님.
돌아가시기 한 달 전 자기팀의 투수에게 얼굴을 맞아 병원에 입원한 심정수를 찾아가 진심이 우러나는 사죄를 하던 인간적인 모습의 김감독님.
그곳에는 다툼이 없겠죠.
그곳에는 스트레스가 없겠죠.
맘 편안히 잘 계실것이라 믿습니다.
오늘 당신의 후배들이, 당신의 제자들이, 당신의 동료들이
녹색 그라운드에서 4강 혈투를 펼칩니다.
너무나 어린 애들입니다.
지금 어린 선수들을 잘 지켜봐 주십시오.
고 김명성 감독님의 명복을 빕니다.
고 김명성 감독님, 당신의 우리의 영원한 거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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